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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복음을 전해야 한다

일단 교회로 데려오든지 어떻든지, 언젠가는 진리를 가르쳐야 한다.
복음이란 뭘까? 하나님의 말씀이고, 성경이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이다. 성경에 기록된 구원에 관한 (이미 성취하신, 또한 장차 성취하실) 하나님의 계획이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나라의 소식이다. 전도란 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도를 하는데 성경을 이용한다는 말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성경은 전도의 본질이다. 본질을 도구나 방법이라고 폄훼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축구는 공을 차는 것인데, 축구 경기에서 골을 넣기 위해 공을 이용한다고 하면 얼마나 우스운가.

교회로 사람을 데리고 오는 것을 전도라고 하니, 말도 되지 않는 말이 사용된다. 전도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고, 진리를 전하는 것이다. 행여나 교회로 사람을 데리고 올 목적으로 전도한다고 해도, 언젠가는 복음을 전해야 한다. 복음 없이 교회로 사람을 데려오고, 또 복음 없이 그 사람들에게 교회로 사람을 데려오라고 하고... 그것이 주님의 명령이라고 무의미하게 반복할 수는 없다. 언젠가는 제대로 성경을 가르쳐야 한다.


복음을 전하는 두 가지 상황

교회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모이는(또는 모인) 곳이다.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다른 성도들과 교제하며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도록 그들을 교회로 인도해야 한다. 호의는 있으나 아직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 역시 자세하게 복음을 듣고 성경을 배울 수 있도록 교회로 인도하는 것이 맞다. '잃어버린 양'을 교회로 인도하는 상황은 이렇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1) 먼저 복음을 전하고, 교회로 인도한다.
2) 우선 교회로 인도하고, 복음을 듣게 한다.

최악의 경우는 교회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아직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을 복음을 전하지 않는 교회로 인도하는 경우는 최악이다. 그 사람은 교회 안에 들어온 것 같지만, 오히려 복음을 들을 기회가 차단된다. 그런 교회의 설교는 대개 설교자의 신변잡기와 정치적 연설로 점철되고, 별다른 성경공부 모임도 없다. 아무나, 아무 교회나 출입한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구원은 믿음에서 나며,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에서 난다(롬10:17).

1)의 경우에는 일반 성도가 전도의 일선에 서게 되고, 2)의 경우에는 설교자가 핵심 전도자가 된다. 그 절충적 모델로 좀더 자유로운 여러 모임의 리더들도 복음 전도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물론 그런 모임은 제도적 교회에 얽매이지 않을 만큼 개방적이어야 한다.


하부구조가 든든한 교회

일반 성도가 전도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려면, 충분한 성경 지식이 필요하다. 자신의 신앙고백을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중요한 성경구절이나 어떤 핵심적 교리에 대하여 충분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체험적 신앙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교회가 이런 방식의 전도를 추구한다면, 훌륭한 교사들을 양육할 수 있어야 하며 그들에게 여러 모임을 맡길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모임을 통해서 성경을 가르치고 배우며, 성도 간의 교제를 통하여 마음을 열고 함께 기도할 수 있다. 신앙의 권면과 위로가 있는 모임을 통하여 신앙의 분량은 자라가며 기쁨을 얻게 된다. 그렇게 해서 누구나 '소망에 관한 이유'를 대답할 수 있게 되며, 일반 성도들도 복음 전도자의 자질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모임은 특별할 필요도 없고, 특별해서도 안 된다.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상적인 모임이어야 한다. 플래카드 걸어놓고 하는 그런 모임이라면 효과는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매주 교회당의 한쪽 구석방에서, 혹은 아무개의 집에서 모일 수 있으면 더욱 좋다. 이번 주에 나오면 다음 주에 꼭 참석해야 하는 그런 모임일 필요도 없다. 이런 모임은 참석자들에게 의무가 되지 않고, 권리가 되어야 한다.

이 정도 하부구조를 가진 교회가 되면, 목회자나 설교자가 '전도합시다'라고 한 마디만 해도 충분한 메시지가 전달된다. 이미 성도들에게 성령이, 지혜가, 은혜가, 기쁨이 충만해 있다면 긴 설명이 필요없다. 복음의 기쁜 소식을, 기뻐해야 하기 때문에 기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기쁘기 때문에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은 것은 너무나 쉽다. 각 모임은 성도들을 양육하고, 그곳에서 기쁨을 얻은 성도들은 그 기쁨을 사람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전하게 된다. 새로운 멤버가 모임에 초청되며, 모임은 교회와 새 지체와의 문턱을 허물고, 모든 성도들은 공예배에 '대회(大會)'로 모여 은혜와 기쁨으로 하나님께 예배한다. 계속해서 교회는 각 모임들을 소개하며, 리더와 모임을 격려한다. 이렇게 규모있는 교회는 사랑 안에서 세워져 가는 것이다(엡4:16).

그러나 성도들 간의 교제는 행정적인 관계에서만 이루어지고, 조직관리 차원에서만 다루어지는 교회의 강단은 성도들에게 '전도하라'고 설득하기에 바쁘다. 설교자는 목이 아프고, 회중들은 귀가 따갑다. 정작 성도들은 복음에 대하여 듣지 못하고 있으며, 따라서 전할 복음도 없기 때문에 서로 피곤한 상태가 되고 만다.


복음 전도에 충실한 교회

2)의 상황처럼 성도들이 별다른 '복음 전도'없이 우선 교회로 사람을 데려올 수 있으려면, 교회 강단이 복음 전도에 충실해야 한다. 말 그대로 설교자가 핵심 전도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구원을 이루셨는가, 죄란 무엇인가, ... 날마다 이런 복음을 들을 수 있는 '전도 예배'라면, 성도들이 힘들이지 않고 복음에 호의적인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할 수 있다.

윌로우 크릭(Willow Creek) 교회와 같은 미국의 유수한 교회들이 대형교회로 성장한 배경에는 '열린 예배'라는 전도 예배가 있었다. 그런 교회들은 아직 믿음은 없지만 복음에 호의적인 사람들을 구도자(求道者,seeker)라고 해서, 구도자들을 위한 집회를 정기적으로 열었는데 그것이 잘 알려진 '열린 예배'라는 것이었다. (정말 구도자일 뿐이라면 참으로 예배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런 집회를 '예배'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이다. 하지만 여기서 그런 논쟁은 불필요하다.)

구도자들을 위한 집회였기 때문에 뮤지컬, 드라마, 락 음악, 화려한 조명과 영상 등의 갖가지 방식들이 동원되었다. 때로는 그들을 위하여 정기적인 집회를 토요일에 갖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예배에 그런 장치와 도구들을 사용하는 것이 합당한지, 정기집회를 주일이 아닌 토요일에 갖는 것이 주일성수 개념을 해치는 것이 아닌지 등의 소모적 논쟁만 일으켰다. 그러나 그런 집회의 본질은 구도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왜 그런 집회를 성도들의 예배와 비교하는가?

이처럼 목적과 목표가 분명한 전도집회에서 설교자가 전할 수 있는 메시지는 '복음'뿐이다. '우리 교회 담임목사님은 어떤 분이고, 우리 교회는 지역발전을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으며...' 교회를 선전하고자 그런 집회를 개최하는 거라면 교회 예산을 낭비하고 성도들의 헌금을 남용하는 것이니 당장 그만 두어야 한다. 또 분명한 목적도 없이 예배 형식에 새로운 것을 도입하려고 애를 쓰고, 예배 시간을 조정하는 것도 복음 전도에는 큰 도움이 되질 않는다.

'열린 예배'를 예로 든 것은 그만큼 '복음 설교'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교회 규모가 크지 않아서, 교회 각 기관의 크고 작은 모임이 활성화되지 않은 교회에서는 성도들이 복음을 들을 기회가 매우 적다. 따라서 교회의 모든 역량은 복음을 전하고 성경을 가르치는 일에 전력하여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시간은 공예배 시간이 된다. 전도하라고 설교할 게 아니라 그 시간에 성경을 펴고 전도해야 한다. 복음을 전하라고 설교할 게 아니라 그 시간에 복음을 전해야 한다. 복음에 대하여 다 알고 있다고 자만하는 순간, 복음 전도의 유일한 시간은 낭비되는 것이다.

설교가 곧 복음 전도가 되는 교회로 사람을 인도하는 것은 유효하다. 복음을 듣고 싶어서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에게는 복음을 전해야 한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선포해야 한다. 성경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성경을 가르쳐야 한다. 공예배가 유일한 시간이라면, 그 시간에 복음을 전해야 한다.


복음 전도에 충실해야, 하부구조도 든든하다

사실 '전도하라'는 전도, 그런 설교는 큰 의미가 없다. 전도해야 한다거나 전도하라는 권면은 복음이 아니다. 복음은 구원받은 자들에게 기쁜 소식이다. 기쁜 소식은 말하고 싶어서 안달이 날 수밖에 없다. 날마다 새로운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면, 그것이 곧 복음이기 때문에 날마다 기쁨이 충만해진다. 그러면 입이 열린다.

앞서 교회의 전도 상황을 두 가지로 구분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온전한 교회의 모델은 아닐 것이다. 교회 강단도 복음을 전하고, 성도들도 생활 속에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 복음을 들은 성도들은 1차적으로 서로 그 기쁨을 나눌 모임을 필요로 한다. 아무리 말려도 모이기를 힘쓰는 것이 정상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모임을 폐하려고 하면 교회는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지체들이 힘이 없으면 몸도 힘이 없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일단 교회로 데려오든지 어떻든지, 언젠가는 복음을 전해야 한다. 언젠가는 진리를 가르쳐야 한다.

by 나쥬니

태그 : 복음, 전도, 성경, 교회, 하부구조, 조직관리, 복음 전도, 윌로우 크릭, 구도자, 열린 예배

로뎀나무

전도의 열매를 맺기에 열심을 내고자 하는 저에게 참으로 좋은 말씀입니다.
하부구조를 든든하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우리 성도들에게도 좋은 권면이 될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2006-05-15 17: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