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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늦더라도 참석해야 한다

...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마20:14)
예배 사회를 보거나 찬양을 인도할 때, 내가 갖고 있는 불문율은 '성령을 훼방하지 말자'는 것이다. 예배를 방해하고, 우리 마음에 예배의 마음을 주시는 성령을 훼방하는 경우는 대부분 예배 인도자의 '잔소리' 때문이다. 쓸데 없는 말로 오히려 예배를 산만하게 하고 예배자들로 하여금 길을 잃게 만드는 경우가 허다하다.

교사의 입장에서 뭔가 훈계하고픈 아이템(?)이 떠오르더라도, 교훈은 예배 설교에 맡겨진 기능이라 생각하여 참고 넘어가는 편이다. 그런 내가 광고 시간에 잔소리를 하고 말았다. 예배 시간에 늦는 학생들이 여럿 있어서였다.

지난 몇 주 동안 예배에 참석하는 학생들이 줄어서였을까? 그들에게 화가 나기는 커녕 기특한 마음이 들었다. 교사로서 마땅히 예배 시간에 늦지 말라고 따끔하게 훈계를 했어야 하지만, 나는 오히려 늦더라도 예배 시간에는 꼭 참석하라는 부탁을 했다. 일찍 와서 예배를 준비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지만, 예배 참석하는 것과 참석하지 않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라고 일러 주었다.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그런데 그 잔소리를 하면서 예수님의 품군 비유(마태복음 20:1-16)가 생각났다. 이 비유에서, 하루종일 일한 품군과 한 시간 일한 품군이 동일하게 한 데나리온을 품삯으로 받는다. 얼마나 불공평한가. 하지만 예수님은 그것을 '천국의 원리'라고 소개하셨다.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마20:14)

그렇다면 이 불공평한 원리는 구원의 문제뿐만 아니라 예배, 봉사, 양육 등의 모든 생활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 아닐까. 물론 그것이 그리 단순한 명제는 아닐게다. 어차피 똑같이 구원받는 것이라면 죽기 바로 직전에 '아멘'하고 구원받겠다거나, 어차피 똑같이 예배 참석한 것이라면 예배 끝나기 바로 직전에 오겠다거나... 그렇게 생각한다면 큰 실수를 하는 거다.

거꾸로 생각해서 이 비유는 11시부터 일한 일군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처음부터(혹은 3시부터) 일한 일군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이 비유는 결코 일군들에게 요령을 피우는 방법을 일러 주시고자 하신 말씀이 아니다. 이 비유는 먼저 온 사람들에게(육적으로는 유대인들에게) 이런 '천국의 원리'에 불평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주일예배, 늦더라도 참석해야 한다

동시에 이 비유는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교회 다닌지 오래 되었다고, 예배 시간에 일찍 참석해서 자리에 앉아 있었다고 자랑할 일이 아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될 수도 있다. 함부로 초신자들이나 믿음이 약한 자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언제라도 우리보다 앞설 수 있다.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마20:16)

사춘기 시절의 학생들에게 예배 참석은 이래저래 전쟁이다. 믿지 않는 부모의 눈치를 살펴야 하고, 시험 기간에는 학원과 교회가 서로 팔다리를 잡아당긴다. 그리고 늦잠은 오전 예배의 최대의 적이다. 이런저런 상황을 이겨낼 만한 믿음이 부족해서 예배 참석을 못 하는 경우는 둘째치고, 늦잠 때문에 예배를 포기하는 그들의 갈등은 이미 우리도 경험한 바다. 부시시한 얼굴로 예배 시간에 늦어서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느니...

차라리 교회 가지 말자고 마음을 꺾는 아이들이 한둘이 아닐거다. 아파서 못 왔다고 거짓말을 하게 되면, 죄는 점점 쌓여가고 교회는 점점 멀어만 간다. 한두번 예배에 빠지기 시작하면 습관이 되어서 그대로 믿음이 느슨해지는 친구들을 많이도 봤다. 어려운 환경에서 선한 싸움을 하다가 쓰러지는 아이들도 안타깝지만, 작은 일로 갈까말까 망설이다가 결국 믿음까지 저버리는 아이들은 더욱 더 안타깝다. 온전한 몸으로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불구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낫듯이, 창피당하더라도 주일을 지키는 것이 백배 나을텐데 말이다.

그래서 늦더라도 주일예배에는 꼭 참석하라고 일러 주었다. 일찍 오고 늦게 오고는 상급의 차이일 수 있지만, 오고 안 오고는 천국과 지옥의 차이와도 같다고 선을 그어 주었다. 예배에 늦었지만 그 자리를 기억한 아이들을 용서하시고 오히려 반갑게 맞아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다.

by 나쥬니

태그 : 주일예배, 예배 사회, 찬양인도, 예배시간, 지각, 늦잠, 천국의 원리, 주일성수

나쥬니

[정리1.]
그 목사님은 다른 예배에 굳이 안 가도 된다는 뉘앙스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자신이 주일예배만 참석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가치판단을 전제로 한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정리2.]
주일예배 말고도 공예배가 많습니다. 모든 공예배가 성도의 의무입니다. 그렇지만 주일예배와 다른 공예배를 동일한 명령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은 아닙니다. 주일(안식일)성수는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백성들에게 하신 명령이고, 공예배는 교회의 결정에 따르라는 2차적인 명령에 해당합니다.
비슷한 예로 십일조를 들 수 있습니다. 많은 종류의 헌금이 있지만, 십일조는 그와 차원이 다릅니다. 주일성수, 십일조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명령이지만, 그 외의 것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유동적인 명령들입니다.

[정리3.]
선배의 신앙적 양심이 주일예배만 참석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면 그뿐입니다. 다만 목사로서 다른 사람의 양심을 건드릴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주의하지 않은 것은 실수라고 여겨집니다. 이것은 고린도전서 8장의 우상제물과 관련한 바울의 설명을 참고할 수 있겠습니다.

[정리4.]
그러나 서로의 신앙 양심을 판단하는 것은 주의해야 합니다. 로마서 14장에서 바울은 서로의 믿음을 판단하고 비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 (롬14:5)

[정리5.]
선배는 주일예배 말고도 모든 예배에 참석하는 이들에 대하여 어떤 판단을 할까요? 저도 모릅니다. 그 선배는 그에 대하여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렇다면 그 얘기를 들은, 그러니까 목사가 주일예배만 참석한다는 얘기를 들은 우리는 누구인가요? 주일예배만 참석하는 성도인가요, 모든 예배에 참석하는 성도인가요? 아니면 주일예배도 잘 참석하지 않는 성도인가요?
상대는 자신을 판단하지 않는데, 오히려 상대를 판단하고 또한 자기 스스로 실족하여 혼란에 빠지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의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책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롬14:22-23)

2006-06-30 11:50

solight

얼마전 아내가 나쥬니님 집들이 갔다 오고서 하는 말이 같이 계셨던 목사님이 -얼마전 이스라엘로 가신 선배이자 목사님- 새벽예배나 수요예배 그리고 금요 철야 예배는 굳이 안가도 된다(?)는 듯한 뉘앙스로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씀하셔서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그자리에서 왜 주일예배만 중요하냐고 물어 보고 싶었지만 참았다고 말입니다.
뭐라고 똑부러지게 해명(?)해 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죠.
저로서도 조금 애매한 것이 주일예배는 못가면 죄의식을 느끼고 불안하고 그런데 평일에는 전혀 그런 마음이 없는게 사실입니다. 나름대로 신념이 확고하고 이유가 있어 못가는 것도 아닌데- 물론 시간과 거리상 못 가는 경우가 더 많지만-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저는 그 목사님이 누구보다도 복음을 위해 힘써 싸우고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며 믿음이 견고한 분이라 의심하지 않는데 아내는 그렇게 좋은 믿음이 아니라고 생각하나 봅니다.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똑부러지게 말을 못해서 답답합니다.
이래서 항상 말씀과 기도로 준비해야 하나 봅니다.
개념정리(?)를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나쥬니님에게 물어 보고 싶네요.^^

2006-06-30 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