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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말미암았느니라 (롬10:17)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더욱 '강력한' 것을 원하고 있다. 시대가 빠르게 변하고, 문명이 빠르게 발달함에 따라 사람들은 어지간한 일에 놀라지 않으며 무덤덤하거나 무감각해지고 있다. 심지어는 '엽기'를 넘어서 '변태'적인 것이 유행하고 문화를 주도하고 있는 현실이다.

세상이 그래서 그런지 교회가 복음을 전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어떤 특별한 것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기사와 이적, 즉 기적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앉은 자가 일어나고, 눈먼 자가 눈을 뜨고, 불치병이 완치되는 그런 기적이 있어야 전도가 된다는 것이다. 사실 그와 같은 일들은 복음으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마11:5). 그러나 그것이 복음을 전하는 전도의 방편으로써 가장 강력한,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닐 것이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그런데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런 현실이 그리 새롭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께서 복음을 전하시던 2천년 전에도 어떤 사람들은 '하늘로서 오는 표적(마16:1)'을 구하였지만, 주님은 단호하게 그와 같은 사람들을 '악하고 음란한 세대(마16:4)'로 규정하신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 비유에서도 그와 비슷한 경향을 말씀하신다. 그 비유에서 음부의 고통 중에 있는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요청한 것은 죽은 나사로를 자기 형제들에게 보내어 그들에게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것이었다. 죽은 사람이 나타나 증거하면 그들이 회개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 대하여 아브라함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눅16:31)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기적만큼 강력한 것은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부활의 증거를 갖고 있다!) 그러나 그런 기적조차도 무효하다는 것이다. 하물며 어떤 중병이 나음을 입는다 한들 유효할까.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마11:5).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했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다. 그 자체로 복음이다. 기적은 복음의 현상이고 나타난 결과이다. 결과로 수단을 삼으면 그 내용은 없어진다.

모든 것이 수단이 되고 오히려 전도가 목표가 되면, 역설적으로 내용이 없는 복음이 되고 만다. 전도(傳道)라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인데, 복음의 현상과 결과를 가지고 전도의 방편을 삼게 되면 정작 전해야 할 복음의 내용은 없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왜 소경이 보게 되었고, 왜 죽은 자가 살아나게 되었는지 대답을 할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다(고전1:21).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전도이고,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얻을 방법은 그 뿐이다. 어떤 기적을 전할 수 있는가.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외에 다른 전할 기적이 없다. 그보다 더 큰 기적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말미암았느니라" (롬10:17)

복음 전도는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것이지 교인을 늘리는 것이 아니다. 교인을 늘리기 위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전도에는 안타깝게도 복음이 빠져있다. 열심히 기적을 구하나, 정작 그리스도의 말씀이 없다. 살아야 한다고 외치지만, 왜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다. 목표 상실이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복음은 없다. 다른 전도는 없다. 부지런히 말씀을 가르치고 전파하는 것 뿐이다.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by 나쥬니

태그 : 전도, 복음, 표적, 부자와 나사로, 하나님의 나라, 그리스도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

나쥬니

예수님께서 병과 약한 것을 고치신 이유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부분 '믿음을 보시고' 고쳐주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나,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2006-04-17 21:03

신범

예수님이 이땅에 오셔서 귀신을 내어 쫓고 병자들을 고쳐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을 이적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시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능력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복음을 전하셨고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또한 제자들에게도 복음을 전하러 보내실때 귀신을 내어 쫓는 능력과 병고치는 능력을 주세서
전도하게 하셨습니다(막6:7). 그러므로 우리는 병고치는 능력을 통하여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삼고,
복음을 전한뒤에 말씀으로 양육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문제는 한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신유의 은사가 있는 목사님들은 전도나 양육을 하지를 않습니다. 그것만 가지고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니까요. 또한 전도와 양육에 관심을 가지신 목사님들은 능력에 은사가 없습니다. 그러니 능력행하는 목사님들을 이단시 취급하지요. 이 모두가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지요. 가장 성경적인 방법은 어떤 것일까요?
능력과 전도와 말씀으로 양육하여 예수님의 제자를 삼는 것이 아니까요?

2006-04-13 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