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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인(全敎人)'의 함정

한 몸을 이루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는 것이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고전12:27)

맞다. 교회는 한 몸이다. 교회는 오직 한 분 그리스도를 주로 섬기며, 교회는 그분의 몸이다. 그래서 한 몸이다. 백번 맞는 말이다. 반면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각 지체이다. 성도가 한 몸을 이루지만, 모두 동일하지 않고 각양각색으로 '지체의 각 부분'을 이룬다.

바울이 전한 하나님 말씀 가운데 '한 몸'만을 강조하면 '각 지체'가 무시되어 온전한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 '전교인'을 하나로 묶어서 하나임을 강조하고 매사에 성도의 무리를 하나로 규정하게 되면, 뜻하지 않게도 온전한 한 몸이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불편한 지체 부자유자가 될 수도 있다. 손가락을 서로 붙이는 것이 한 몸일까? 팔과 다리를 몸통에 꽁꽁 매어두는 것이 진정 한 몸을 이루는 것일까?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엡4:16)

교회가 한 몸인데, 한 몸을 강조하는 패러다임 속에는 은연 중에 '두 몸'을 이야기한다. '교역자'와 '평신도'...

성도들이 한 몸을 이루는 것은 마땅하다. '각 마디를 통하여',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 바울은 '한 몸'만을 웅변하지 않고 '각 지체'를 설명하면서 균형을 전한다. 각양 은사에 따라, 각양 직분에 따라 교회는 한 몸을 이루며 그리스도에게까지 성장한다. 거기에는 어떠한 구분도 없이 '각 지체'일뿐이다. 역할이 다를 뿐, 자격은 동등하다. 그래서 한 몸이다. 거기에는 어떠한 지위의 격차나 높낮음이 없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가 '한 몸'을 말하면서도, 교역자들과 평신도들 간의 구분을 떨치지 못하는 것은 대단히 유감이다. 그 구분은 우리의 뇌에 심겨져 있으며, 우리의 마음에 새겨져 있어서 쉽게 거부할 수가 없다. 그 구분을 공식화하려면, 반드시 더 많은 구분과 분류가 있어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각 지체'이기 때문이다. (두 부분이 아니다!)


우리의 몸은, 몸을 먼저 이루고나서 각 지체로 나누어지지 않는다. 우리 몸은 그런 식으로 진화되지 않았다. 오히려 각 지체가 '연락하고 상합하여' 몸을 이룬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어떤 순서도 가당치 않으며 몸과 지체는 동시에 존재하고 시작한다. 무엇이 먼저일 수가 없다. 한 몸을 이루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는 것이다.

전교인 훈련, 전교인 교육, 전교인 프로그램, ...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 수는 없다. 각 지체를 같은 체계로 훈련하고 교육한다고 해서 건강한 몸이 되는 게 아니다. 일년 내내 '전교인', '한 몸'만을 부르짖으면 결국 아무것도 아는 게 될 수도 있다. 오히려 몸은 찌뿌둥하고, 각 지체의 기능이 후퇴할 수도 있다.

축구팀을 예로 들어보자. 대부분의 단체경기가 그렇듯이 축구라는 경기도 역시 팀워크가 중요하다. 서로간의 호흡이 중요하고, 팀 전체의 체력도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고 매일 모든 선수들에게 같은 훈련만 시키면 어떻게 되겠는가. 수비수와 공격수의 훈련 방법이 같고, 공격수와 골키퍼의 훈련 방법이 같다면 그 팀이 어떻게 되겠는가. 수비수에게 요구되는 능력이 있고, 게임메이커에게 요구되는 능력이 있다. 각 선수들이 맡은 포지션과 그에 따른 역할이 다르다면, 각 선수들의 훈련방법도 다양해야 한다.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 (고전12:21)

몸은 하나지만, 각 지체의 역할과 분량은 다르다. 눈과 손의 역할은 전혀 다르다. 눈의 능력이 손에게는 없다. 또 발에게는 머리의 능력이 없다. 그와 반대로 눈에게는 손의 능력이 없고, 머리에는 발의 능력이 없다. 자기의 기준으로, 혹은 일률적인 기준으로 각 지체를 평가하기 시작하면 남아나는 것이 없게 된다. 모두가 병신인 것 같고, 모두가 잘못된 것 같다. 하지만 서로의 역할과 분량을 인정하게 되면 하나도 버릴 것이 없고 존귀할 뿐이다.

'한 몸'을 이룬다는 명목으로 '전교인' 훈련만 하게 되면, 몸은 피곤해진다. 초신자가 교역자와 같아질 수는 없다. 청년이 장로와 같아질 수도 없다. '각 지체'를 묶어두면, '한 몸'이 되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없게 된다. '한 몸'이 먼저이고 '각 지체'는 나중이라는 인식은 위험하다. 이미 주님께서는 교회의 머리가 되셨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그분의 몸을 이루는 각 지체가 된 것이다.

교회운동은 '각 지체의 분량'을 잘 헤아리고 성장시키는 것이 우선이다. 교회운동은 교회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키우는 것이다. 교회의 균형된 성장을 왜곡하는 신앙적 전체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by 나쥬니

태그 : 전교인, 교회, 지체

나쥬니

2004년 3월 15일, 갓위더스에 남겼던 칼럼...

2007-03-27 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