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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M과 대중음악

새로운 대중음악 CCM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CCM은 'Contemporary Cristian Music'의 약자이다. (혹자는 'Cristian Contemporary Music'라고 하기도 한다.) 이미 그것은 젊은 크리스쳔들에게는 전혀 낯설지 않은 말이 되었다. 그 의미에 대한 견해 차이가 비록 존재하기는 하지만, 아무튼 CCM이라는 유행(?)을 통해서 기독교음악이 현대화되고 세련되어지고 있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복음성가의 새로운 명칭?

예전에 교회음악을 흔히 크게 '찬송'과 '복음성가'로 구분하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 '복음성가'라는 명칭이 CCM으로 대체되고 있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CCM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내린다하더라도 그런 식으로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찬송과 복음성가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관점에 따라서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그 대상의 관점으로 보면 찬송을 하나님께 하는 것이고, 복음성가는 사람들 사이에 불려지는 노래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복음성가를 예배에 사용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대두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찬송가에 있는 곡을 찬송이라고 하고 그 외의 곡들을 복음성가라고 할 때 또다른 분류상의 오해가 생겨 예배음악에 대한 지나친 편견이 생겼다.

예배음악은 엄밀히 말해서 그 내용(가사)에 의해 분별되어져야 하는 것이지, 음악의 장르나 시대의 구분이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찬송가에 포함되어 있는 기존의 복음성가들은 예배음악으로 적합하고, 찬송가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지만 순전히 시편을 가사로 채용하였고 또 널리 불려지고 있는 노래는 예배음악으로 거부되어지는 것은 그렇게 생긴 논리의 비약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CCM을 복음성가의 새로운 명칭으로 오인함으로써 그런 편견이 더욱 더 확대된다면 이는 기독교문화의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CCM은 '현대적인 기독교 음악(다분히 음악적 표현이다!)'으로 이해할 때, 오히려 찬송과 복음성가 모두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형태이다. 악기의 사용이나, 리듬, 화성법에 대한 현대적인 표현 방식으로 보면, 이미 우리는 교회음악 전반에 걸쳐서 CCM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표현 방식'에 대한 기성세대들의 우려와 걱정 또한 만만치는 않지만 말이다.


대중과 대중문화

CCM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있을 수 있겠지만, '예배음악으로서의 CCM'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마치고, 여기서는 '대중음악으로서의 CCM'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한 유명한 기독교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는 CCM을 '음악은 오늘의 음악, 그 메시지는 영원한 것으로.. 새로운 대중음악'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정의라고 하기에 좀 추상적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꽤 적절하고 풍부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기독교 음악이라고 하면, 그 안에는 시대를 초월한 진리가 포함되어 있음이 틀림없고, 또 그것은 영원하기에 시대에 따라서는 어떠한 모양의 음악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음악은 오늘의 음악, 그 메시지는 영원한 것으로'라는 표현은 적절하며, 이미 앞에서 예배음악에 대해 짧게 언급한 것이 바로 그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새로운 대중음악' 역시 어떤 관점으로 보면 아주 괜찮은 표현이다. (다음의 논의가 이 표현 자체를 비판하려는 것이 아님을 밝혀둔다.)

그런데 하지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그것은 대중음악에서 말하는 '대중'은 누구를 의미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좀 과격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대중이 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대중음악, 아니 대중문화란 무엇인가? 대중문화란 안타깝게도 '대중이 만들어낸 문화'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대중을 위한 문화'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대중을 위한 배려는 별로 없다. 역시 과격한 표현인데, 대중문화를 혹평하여 정의하자면 '대중을 선동하는 문화'이다. 대중은 '대중문화에 선동되는 무리들'이다.

대중문화는 '부와 권력(제한된 영역일 수 있음)'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이 대중매체를 통해서 다수의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자극함으로써 형성된다. 그리고 대중문화의 무기는 대중매체를 통한 '유행'이다. 이것은 전염병과도 같다.
어찌보면 대중이 대중문화를 선택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으나, 실제로는 대중문화가 대중을 선택하고 변화시킨다. 대중이 대중문화를 선택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 또한 대중문화의 힘이다. 그래서 대중은 시대의 분위기에 맞추어 이리저리 몰려다니게 되는 현상을 보인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그리스도인들은 대중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고, 또 그렇게 되어서는 안된다.


새로운 대중음악, CCM의 대중은 누구인가

그렇다면 CCM을 '새로운 대중음악'이라고 할 때, 과연 그 '대중'은 누구인가? CCM의 복음적 성향으로 보면, 당연히 그것은 복음을 들어야 할 불신자들이어야 한다. 그래서 CCM 공연이나 집회는 불신자들의 참여를 유도해야 할 필요가 다분히 있다. 그런데 그런 의미에서 '대중음악' CCM은 아직도 제대로 세상에 선포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CCM 음반 매장은 일반매장과 분리되어 있으며, 기독교 방송에 제한되어 들려지며, 공연(콘서트)조차 불신자들은 제발로 모여들지 않는 것 같다.

진정한 대중음악이라면, 대중매체의 한가운데 있어야 하며 누구에게든지 개방되어 있어야 한다. 세상 속에 침투되지 못하고 그저 특정집단에 의해서만 불려진다면, 그것이 종교음악이지 대중음악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CCM이 그런 실패를 빌미로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성도들을 대중으로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그건 더욱 더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는데, 현실은 그런 조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CCM 공연에는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모이게 된다. 성도들이 모였으니, 그 공연은 아마도 예배를 위한 집회를 방불케 될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대중'이 된 젊은 크리스쳔들은 그런 분위기에 쉽게 이끌리어 아티스트들의 말을 마치 설교인양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며, 기술적인 현란함에 이끌리어 예배와 찬양에 동참하게 되는데... 그 과정은 대중이 그러하듯이 수동적이고 소비적으로 될 수 있다. 그나마 잘 계획된 예배 성격의 공연들이 시도되고 있어서 다행이기는 하지만, CCM 전체를 놓고 볼 때는 '대중'들이 그렇게 수동적으로 반응하도록 방치되는 것에 대한 우려를 갖게 된다. 뿐만 아니라 CCM은 음반이나 방송, 인터넷을 통해서도 보급 확산되는데, '대중'들은 그것을 따라가기에 바쁘다. 과연 지금의 CCM 문화는 '유행'이란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CCM의 대중성에 대한 우려

'대중음악'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안타깝게 여기는 것은, 그것의 수동적인 성향 때문이다. CCM이 '그리스도인들의 음악'으로서 대중음악이 되려면, 대중들의 입장은 보다 능동적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CCM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고, 찬양이라는 것은 가장 능동적인 예배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떠한가, 이미 대중이 된 크리스쳔들은 자신의 입으로 부르기보다 듣기를 즐기고 있지 않은가? 그런 다양한 시도들에 대해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며, 유행에 발맞추기에만 급급한 것은 아닌가? CCM은 이미 기존의 교회음악과는 그 내용(가사)이 아닌 '표현 능력'에서 차별화되고 있기 때문에, 자칫 '껍데기'로만 선별될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자발적인 지각을 사용하기에 둔해진 대중에게는 그런 선별과정이 귀찮은 것이 될 수가 있다. 아마도 어른들이 CCM에 대하여 우려하는 것에 그러한 문제도 있을 것이다.

대중음악으로서의 CCM을 얘기하건대, 그리스도인들을 수동적인 대중으로 만든 책임을 CCM에 지우고 싶지는 않다. CCM이 대중음악으로서 갖는 한계는 CCM 자체에 있다기보다 오히려 오늘날 퇴보된 기독교 문화에 기인된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 문화는 한마디로 예배문화이다. 그리고 우리의 예배문화는 다분히 수동적이다. 그게 현실이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반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는 예배를 수동적으로 참여한다. 우리는 그저 예배순서에 따라 움직이면 된다. 우리는 성경 읽는 것보다 설교 듣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성경 읽는 것도 누군가 골라주어야 읽는다.

찬송 역시 골라주는 것을 회중에 묻혀서 따라 부르면 그만이다. 성가대는 노래 실력이 형편없는 나를 대신하여 찬송하는 것인가? 누군가 나를 대신하여 대표로 기도해 주는 것인가? 우리의 예배는 아무런 생각없이, 아무런 반응없이 앉아만 있어도 가능한 것 같다. (사실 그것은 참된 예배가 아니다.)

가장 예배스러워야 하는 공예배의 모습이 그러하다면, 그리스도인들의 실제 삶에서 표현되는 예배는 과연 어떠할 것인가... CCM을 받아들이는 크리스쳔들의 수동적인 자세는 이러한 수동적인 예배자세를 대변해 주고 있는 것이다.


능동적인 예배, 능동적인 문화운동

역사적으로 볼 때, 교회음악이 세상음악을 주도했던 시대가 있었다. 그리스도인은 능동적으로 문화에 참여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능동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능동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한다. 예배가 수동적이면, 우리는 세상 속에서 숨어지낼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는 CCM이라고 하는 '새 노래'를 부르고 있다.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재능과 악기, 그리고 음악적 모든 요소들을 동원하여 하나님을 늘 새롭게 찬송하는 것은 선한 일이다. CCM의 복음적 성격(세상에 선포되어질 노래)과 예배적 성격(하나님께 드려질 노래)에 대한 우려들을 대충 살펴보긴 했지만, 그 어느 면에서도 CCM은 대중음악으로서 충분한 긍정적인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우리가 보다 능동적인 대중이 된다면, CCM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대중음악으로서 훌륭하게 이 시대를 아름답게 수놓을 수 있을 것이다.

by 나쥬니

태그 : CCM, 대중음악, 복음성가, 찬송가, 예배음악, 대중매체, 예배문화, 유행, 새 노래

나쥬니

오랜 전에 쓴 글인데, 하나씩 옮겨올 필요가 있어서 조금 수정해서 다시 올렸다.

요즘은 인터넷과 mp3 보급으로 인해 음반시장이 움츠러들어서 그런지 대중가요가 침체되어 있는 듯하다. 그건 CCM도 마찬가지다. 다른 한편으로는 CCM이 대중음악의 한 부류였을 뿐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기도 하다.
하지만 CCM이 대중문화에 침투해 들어갈 수 있다는 기대를 아직 접은 것은 아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수로서 활동하고 있지만, 그들이 시상식에서 '하나님께 이 영광을 돌립니다'라는 수상 소감을 말할 뿐 아니라, 실제 그들의 활동에, 노래가사에, 멜로디에, 리듬에, 춤에 복음을 담아서 대중문화 속에 씨를 뿌릴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2006-04-14 17: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