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섹션 : 칼럼/메모

목사의 일, 집사의 일

"...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 (행6:3,4)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행6:4)

설교 시간에 많이 들어왔던 말씀이다. 설교자는 서슴없이 이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라', '말씀을 전하라'고 외친다. 거기에 붙여서 그러한 일에 '전무(전념)하라'는 권고까지 덧붙인다. 회중들, 성도들에게 말이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우리'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문제의 발단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행6:1)

이 말씀의 배경에는 교회의 성장과 부흥이 있다. 제사장을 앞세운 공회는 교회와 사도를 핍박하였지만, 제자는 더 많아졌다.

그런데 그에 따른 부작용이 생겼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가운데 히브리파, 헬라파 등의 부류가 나뉘었다. 그 중 헬라파 과부들이 구제 대상에서 자주 빠진다는 불만이 생겨났다. 예루살렘에서, 시쳇말로 국내파(히브리파)는 주류, 해외파(헬라파)는 비주류였으리라.


사도들의 결단

"열 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행6:2)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언제나 갈등은 있게 마련이다. 지상교회는 이런 갈등을 항상 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하나님의 지혜와 은혜로 그 갈등을 풀어가면서 또한 성장하고 부흥하는 것이 교회일 것이다.

사도들은 이런 문제가 생기자, 지혜로운 결단을 내렸다. 몇몇 사람을 세워서 구제(공궤)하는 일을 맡기겠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사도 자신들은 그 일(구제)에서 손을 떼겠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을' 수 없기 때문에!


집사의 등장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행6:3)

여기서 '일곱 집사'가 등장한다. 이 사람들을 오늘날의 '집사'로 볼 것인가에 대한 이견은 있을 수 있겠지만, 성경에서 빌립을 '일곱 집사 중 하나(행21:8)'로 소개하므로 '집사'로 볼 수 있겠다. 다만, 서리집사는 아니고 '안수집사(행6:6)' 말이다.

이렇게 (안수)집사의 유래를 살펴보면, 그 직분의 하는 일은 분명해 보인다. 좁게 보면 '구제', 즉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는 일이다. 그런데 구제를 하기 위한 과정을 살펴보면 그 직무는 더 넓게 이해할 수 있다. 교회 차원에서 구제를 하는 것은, 성도들의 헌금을 사용하는 일이다. 넓은 의미로 집사의 직무는 교회 재정을 다루는 일이다.

구제만 해도 쉬운 일은 아니다. 히브리파, 헬라파 구분하지 않고 고르게 배분해야 하는 일인데,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교회 재정도 마찬가지다. 어떤 항목에 더 많이 지출할 것인가 결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일이 바로 집사의 몫이다.

사도들은 이 일(구제,재정)을 집사들에게 맡겼다. 세속적으로 돈과 관련된 일을 큰 권리로 생각할 수 있다면, 사도들은 이 권리를 포기한 것이다. 왜? 이 일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목사의 사역

본문에 나오는 '일곱 사람'을 집사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만큼, '사도'들을 오늘날 목사로 볼 것인가 하는 것도 간단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오늘날 '사도'라는 직분은 없다. 물론 '신(新)사도'라 하여 다시금 사도라는 직분이 이 시대에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잘못된 주장이다. (주님의 명령을 직접 받은 사도들은 이미 그 명령을 따라 이 땅에 교회를 세웠다.)

비록 '사도'라는 직분은 없지만, 본문에 나오는 사도의 역할은 교회 지도자로서, 말씀 사역자로서 오늘날 '목사'라는 직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나 본문에서 강조되는 '말씀 사역'에 주목해 보면 더욱 그렇다.

교회에 문제가 발생했고, 사도들은 이 문제를 집사를 세워 해결했다. 그런데 교회 재정을 집사들에게 맡기겠다는 결정의 백미는 그 다음에 있다.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여기서 '말씀 전하는 것(the ministry of the word)'은 '전도'라고 할 수 있겠지만, 좀더 명확한 의미로는 말씀 사역, 즉 '설교'를 말한다. 사실 전도와 설교는 같은 의미(preaching the word)이다. 사도들은 이 사역을 교회 재정을 돌보는 일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설교는 '교회 재정을 다른 사람에게 맡겨서라도' 전념해야 하는 목사의 가장 중요한 사역이다.


역할 분담의 열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행6:7)

그 결과는 대단했다. 구제 문제가 해결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더 왕성해졌다. 제자가 훨씬 더 많아졌을 뿐만 아니라, 교회를 핍박하던 제사장의 무리가 회개하는 역사도 일어났다.

당연한 열매다. 사도들이 말씀 사역에 전념했기 때문이다. 그 배경까지 챙기자면, 사도들이 말씀 사역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집사들이 교회 재정을 지혜롭게 수행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슴 아프게도, 오늘날 많은 교회들은 이 원리에 무감각한 것 같다. 오히려 목사는 교회 재정에 전념하고, 기도와 전도는 성도들에게 하란다. 이래서는 교회가 건전하게 성장할 리가 없고, 안팎으로 시끄럽지 않을 리가 없다.

"... 우리(목사)가 이 일(교회 재정)을 저희(집사)에게 맡기고 우리(목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 (행6:3,4)

교회 지도자들이 부디 초대교회의 좋은 경험을 잘 배우고 이행할 수 있기를, 오늘도 간절히 기도한다.

by 나쥬니

태그 : 목사, 집사, 초대교회, 부흥, 교회재정, 헌금, 구제, 설교, 전도, 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