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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를 세우는 이유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행6:7)
안수집사는 교회의 직분 가운데 목사, 장로 등과 같이 안수하여 세우는 항존직이다. 해마다 임명을 받아야 하는 서리집사와 다르다고는 하지만, 그 책임이나 권한이 크게 구별되어 보이지는 않는다. 암튼 그런 안수집사(이하 '집사')를 세우는 일에는 어떤 절차가 따르는데, 임명 절차보다는 번거로운 것이 사실이다. 그럼 왜 그런 번거로운 절차를 밟으면서까지 집사를 세우는 것일까?

규범적인 문제가 있겠지만, 여기서는 성경에 기록된 초대교회의 상황만 짚어보고자 한다. 적어도 최초로 집사를 세웠던 초대교회에서 그 순수한 목적과 이유를 찾아볼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제자의 증가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 (행6:1)

먼저, 집사는 교회가 성장하고 있을 때 필요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니까 할 일이 많아지고, 자연스럽게 일꾼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불순한 의도로 직분자가 세워지는 경우가 있다. 교회 직분은 호봉이나 연차에 따라 계급처럼 개인의 성장주기에 따라 주어지는 게 아니다. 직분은 교회의 필요에 따르는 것이지, 직분자 자신을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집사를 장로가 되는 과정, 또는 그 전단계로 이해하는 것은 정도에서 한참 벗어난 것이다.

교회가 성장하지 않는데 습관적으로 직분자를 늘리는 것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진단 1. 교회가 수적으로 성장하고 있는가?


공평한 구제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행6:1)

사람이 많아지면 여러가지 갈등과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런 일들 가운데 집사는 특히나 구제 문제 때문에 필요했다. 구제는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인데, 좀더 들여다 보면 결국 교회 재정에 관한 것이다. 구제도 헌금으로 모인 재정을 어떻게 분배하여 사용하느냐 하는 문제 중 일부이기 때문이다.

성도가 많아지면, 구제 받아야 할 대상도 많아지겠지만, 그 전에 이미 헌금도 많아지고 재정 규모도 커진다. 만일 이 헌금이 잘못 사용되어지면, 교회는 갈등이 커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운다. 교회 재정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이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눅12:33)

성도 개개인이 구제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 헌금을 통해 교회에 맡겨 구제하게 된다. 헌금을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이라고 말하려면, 적어도 그 헌금의 상당 부분을 구제하는 일에 사용해야 한다. 그것이 교회가 하늘에 보물을 쌓는 방법이다. 이런 고민을 하지 않는 교회라면 애초부터 집사를 세울 이유가 없는 것이다.

진단 2. 교회의 재정 집행을 위해 집사를 세우는가?


말씀의 사역

"열 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행6:2)

그럼 그때까지 초대교회는 재정을 어떻게 관리하고 집행해 왔을까? 사도들의 발언으로 미루어 보면, 사도들이 직접 관여했을 가능성이 크다. 제자들의 수가 적을 때는 얼마든지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교회가 성장하고, 재정 문제가 불거지자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된 것이다.

사도들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기를 바랬다. 그들은 재정도 중요하지만 교회의 본질은 말씀 사역에 있다고 판단했다. (사실상 그 사역 때문에 제자의 수가 많아진 것이다!) 집사라는 직분은 역설적이게도 말씀 사역 때문에 생겨났다.

진단 3. 교회의 말씀 사역을 위해 집사를 세우는가?


성령의 충만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행6:3)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행6:5)

사도들이 집사의 자격으로 성령, 지혜, 믿음이 충만한 사람을 생각했다면, 적어도 그들은 교회 재정을 세속적인 일로 생각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더군다가 그런 자격이라면 사도들 자신과 견주어도 될만한 사람들이 아니었겠는가.

여기에는 또 감추어진 비밀이 있다. 수천, 수만명이 모이는 교회가 되었는데 그 중에 성령 충만한 사람이 없다면 어찌하겠는가? 초대교회는 그렇게 수적으로, 양적으로만 팽창한 교회가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사도들에 필적할 만한 성령의 사람들이 최소한 7명이 있었던 것이다.

사도들의 말씀 사역 때문에 제자의 수가 많아졌다고 했지만, 영적인 성장 또한 말씀 사역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서는 어떻게 제자들의 믿음이, 성령이, 지혜가 충만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집사를 세우는 것은 교회가 양적(수적)으로나, 질적(영적)으로나 고르게 성장했다는 표증이 된다.

진단 4. 집사는 교회의 영적 성장의 열매인가?


역할의 분담

"...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행6:3,4)

초대교회가 수적으로, 영적으로 성장하면서 교회의 직제가 복잡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집사 직분은 그 출발점이 되었다. 현재 신구교를 막론하고 다양한 직제를 가지고 있지만, 직분의 구분에 있어서 사도와 집사, 즉 말씀 사역과 재정 직무의 구분은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개혁의 기치 아래, 개신교는 만인제사장을 강조하여 모든 직분을 수직적으로 보지 않고, 수평적으로 단지 직무의 차이로 보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오늘날 '목사-장로-집사'의 직제를 수직적인 위계로 이해하는 풍토는 종교개혁에 역행한 결과다. 다소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사제주의'의 복원이라 할 수 있다.

'성령이 충만한' 사도들이 '성령이 충만한' 집사들에게 재정을 맡기고, 자기들은 기도와 말씀에 전념하겠다고 선언하는 그 맥락에서 위계 질서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그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하나님의 일을 함께 수행하는 지체들이요, 동역자들이었다.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행6:6)

자칫 안수하는 장면이 위계 질서를 암시하는 듯하지만, 안수의 경로를 따라 한 꼭지점에 다다르게 되면 '교황'이라는 명패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개혁교회는 안수 역시 직무의 차이로 본다. 교회 안의 어떤 직무에서든, 어떤 직분이든 하나님의 대리자가 되는 것이다. 직무를 벗어나면 동등한 지체일 뿐이다.

진단 5. 집사의 직무와 권한은 누구에게나 분명한가?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행6:7)

교회가 집사를 세우는 이유는, 그 목적은 분명하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 전파'에 있다.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거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하는 것은 교회의 영원한 사명이다. 교회의 어떤 직분이라도 그 사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성장하지 않는 교회에서 직분자의 수를 늘리는 것은 허세에 불과하다. 교회가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집사의 직무가 분명하지 않고, 여전히 목사나 장로가 교회 재정을 집행하고 있다면 그런 교회 또한 건강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그런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by 나쥬니

태그 : 집사, 초대교회, 사도, 목사, 구제, 교회재정, 말씀사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