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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의 미신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퇴임 후 가회동에 한옥집 한 채를 전세를 얻어 살기로 했다. 그곳이 '좋은 터'이기 때문이란다.
이명박은 신앙인이다. 아주 신실한 기독교인이다. 교회 장로이기도 하다. 본인한테 상처가 됐지만 “수도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합니다”라는 기도는 그가 결코 ‘나이롱 신자’가 아님을 보여줬다.

그런 그의 신앙심을 의심할 만한(?) 일이 벌어졌다. 이명박 시장은 6월30일 임기를 끝으로 혜화동 공관을 오세훈 신임 시장에게 내준다.

일찌감치 퇴임 이후 살 곳을 알아보다 가회동에 60여 평짜리 한옥집 한 채를 얻었다. 수백억대의 재산가지만 이번엔 전세살이다. 이 시장의 새집이 주목받는 것은 한가롭게 남은 노년을 보내기 위한 곳이 아닌 내년에 치러질 대선을 앞둔 주자의 ‘임시 거처’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눈길이 한 번 더 가는 까닭은 앞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살았던 동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핏 풍수지리의 풍자라도 주워들은 사람이라면 ‘왜 실패한 터에 자리를 잡지?”라는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이명박 측근은 이렇게 답한다. “가회동은 예부터 좋은 터다. 물론 기라는 게 갑자기 좋았다가 나빠질 수도 있다. 이번엔 타이밍(시간)상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집을 사는 것도 아니고 전셋집을 구하면서 풍수지리와 역술 전문가에게 귀동냥하는 것은 드문 일이긴 하다. 더구나 기독교인들은 보통 풍수지리·역술·사주를 보는 것을 ‘미신’으로 치부해 꺼린다. 하지만 이 미신이란 것이 수천 년 동안 우리의 일상과 뼛속 깊이 스며들어 있다. 기독교인 이명박은 잘 모르겠지만 큰 꿈을 꾸는 정치인으로서 이명박이 풍수지리나 역술을 봤다는 것은 전혀 낯선 일이 아니다. 이회창 전 총재의 종교가 천주교인데 조상의 묘를 ‘더 좋은 곳’으로 옮긴 것을 놓고 그 자체를 낯설게 여기거나 흉본 한국인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좋은 터에 자리잡은 이 시장의 전셋집은 접근성은 나쁘다.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끼고 있어 손님이 몰리면 차를 주차하기도 어렵다. 그래도 가외동은 기가 센 이 시장에게 그 기를 눌러줄 만한 명지라고 한다. 조계사 앞 견지동 서흥빌딩에 자리를 잡은 사무실도 북악에서 내려오는 기가 모이는 곳이라고 한다. 사무실이 입주한 곳을 놓고 뜻을 굳건히 하고 상서롭게 한다는 얘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을 보면 쉽게 구한 곳은 아닌 듯하다. 이곳은 그의 최대 업적으로 꼽히는 청계천의 원류였던 곳이기도 하다.

또 다른 상징적 효과를 계산한 흔적도 엿보인다. 한 측근은 “서울 봉헌 발언으로 불교계와 좋지 않은 관계도 고려됐다”고 말했다. 얘기가 어디서 나왔든 많은 것들을 고려하면서 사무실과 집을 구한 것이 모두 진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권주자의 일거수일투족에 온갖 설명이 따라붙는다는 것도 무시할 순 없다.

흔히 대통령은 정치인 개인의 능력과 자질을 넘어 ‘천운’이 있어야 한다고 얘기하는 속에 우리는 천운을 받으려고 역술인을 찾는 정치인들의 행보가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 예부터 나라님은 하늘이 내린다고 했던가. 그 하늘이 풍수도 천운도 아닌 민심이라면 어떨까?

출처 : 한겨레21 (류이근 기자)
기사등록 : 2006년 06월 29일

by 나쥬니

태그 : 이명박, 장로, 봉헌, 가회동, 풍수지리, 역술, 사주, 미신, 대통령, 천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