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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도왔던 개신교 왜 극보수로 돌아섰나

성장주의 이데올로기에 빠져 신자유주의를 방불케 하는 교회의 대형화가 급속도로 이뤄지고 목회자 과잉공급, 무한경쟁, 교회 불균등 성장과 양극화, 개인주의 확산과 파벌화가 진행되고 있는 한국교회의 상층부에선 보수세력 헤게모니가 확대되고 있다.
1970~80년대 한국기독교는 권위주의 독재체제에 맞섰던 ‘진보’적 학생·노동운동의 보호막이자 협력자였다. 저항적 사회운동이 성장한 요람이었고 민주화운동의 결정적인 국면들을 주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처럼 한때 ‘진보세력의 상징’처럼 비쳤던 한국 기독교, 특히 개신교는 어느날부턴가 ‘보수세력의 상징’으로 돌변했다. 그들은 마치 1980년대 이후 레이건, 부시로 이어지는 미국 공화당 주도 ‘보수혁명’에 결정적이 기여를 한 신우파 근본주의 기독교세력을 벤치마킹이라도 하듯 마침내 현실정치에도 뛰어들어 보수우익세력을 견인하면서 한국의 정치와 사회 지형을 바꿔놓고 있다. 올해는 대통령선거의 해. ‘친북좌파정권’ 타도를 부르짖는 그들의 행보는 그런 점에서도 단연 주목거리다.

스스로를 친미·반북·반공세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그들의 기세는 아찔할 정도다.

“김정일의 핵폭탄 위협으로 이 나라가 공산화 통일되어 7000만명이 악독한 김정일의 독재하에서 고통당하다 죽는 것보다 50만명, 100만명이 죽는 한이 있어도 김정일과 핵폭탄과 미사일을 깨뜨려버리는 편이 더 낫다고 봅니다. 전쟁이 언제나 나쁜 것이 아닙니다.”(김홍도 목사. 2003년 6월15일 금란교회 예배 때) “오늘날 세계의 역사는 모두 미국이 주도한다. …사단은 한·미·일 동맹을 제일 두려워한다. 그래서 사단은 반미를 강조한다. 예수 잘 믿는 미국과 한국이 손을 잡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다.”(김상철 장로. 2004년 3월1일 서울교회에서)

도대체 왜 이렇게 됐을까? 종교사회학을 전공한 강인철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교수의 <한국의 개신교와 반공주의>(중심 펴냄)가 쫓는 주제다. 불과 20~30년만에 일어난 한국 개신교계의 극적인 반전(?)의 의미와 배경은 무엇인가.

강 교수에 따르면, 한국 개신교는 정치적·신학적으로 진보파가 다수였던 적이 없다. 거기에는 극단적 보수주의로 특징지어지는 월남자 그룹이 지속적으로 교계를 지배해온 “기이한 현상”이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소수파인 진보세력이 한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과 산하기관들의 운영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며 진보세력의 상징으로 부각됐을까. “정치적 저항의 국면에서 보수적인 다수파의 상대적 침묵, 다시 말해 국가와의 강도높은 대립과 충돌이 연이어 터져나오는 상황에서 교회협 및 가입 교단들 내의 보수적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억압’되고, 심지어 전투의 최전방에 선 ‘소수’의 진보파들이 대세를 이끌어갔다.” 이런 상황은 역설적이게도 6월항쟁과 6.29선언이 터져나온 1987년 이후 민주화가 진척됨으로써 반전된다. “민주화의 분열적 효과 내지 해방된 보수세력의 목소리 내기”라고 할까. 1988년 2월 교회협은 제37회 총회에서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을 발표했다. 선언은 “우리는 갈라진 조국 때문에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을 미워하고 속이고 살인하였고, 그 죄악을 정치와 이념의 이름으로 오히려 정당화하는 이중의 죄를 범하여 왔다”면서 “특히 남한의 그리스도인들은 반공 이데올로기를 종교적인 신념처럼 우상화하여 북한 공산정권을 적대시한 나머지 북한 동포들과 우리의 이념을 달리하는 동포들을 저주하기까지 한 죄를 범했음을 고백”했다.

결별선언은 존재근거를 위협당한 친미·반공 다수파를 자극했고 반격의 기폭제가 됐다. 1989년 6개 교단으로 구성돼 있던 교회협을 압도하는 36개 교단과 6개 단체 다수파가 참여한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이 창립됐다. 1990년대 들어 한기총을 중심으로 한 ‘보수세력의 헤게모니 확장’(저자는 개신교의 최근 변화가 보수와 진보의 양극단이 중앙으로 접근해간 결과라는 수렴론에 찬성하지 않는다.)하에 개신교는 급속도로 오른쪽으로 기울었고 진보적 조직들마저 내부에서 보수적 인사들이 대세를 장악해갔다.

월남자 미국 유학 미국교회 영향권

보수파가 다시 본색을 드러낸 그런 반전의 뿌리는 월남자와 미국이다. 한때 한국최대교회였던 영락교회를 이끌면서 장로교 총회장과 한국기독교연합회(한기련) 회장을 겸임했던 교단의 권력 한경직 목사는 평안도 출신 월남자다. 이승만 대통령이 다녔던 미국 프린스턴대에 유학한 덕에 미 군정청 통역도 했다. 한국전쟁 때 기독교연합전시비상대책위원회 회장으로 미국 원조를 얻어냈고 1951년에는 유엔감사사절단 일원으로 미국에 가 세계적 부흥사 피어스 목사와의 친분을 토대로 ‘선명회’를 창설했으며 숭실대와 서울여대도 세웠다. 한 목사와 같은 7~8만명에 이른 월남 기독자들을 막강한 자금력으로 후원하고 일부를 미국에 유학시켜 한국 개신교를 지배하게 만든 건 북장로회 선교부 같은 미국교회들이었다.

대항하는 교회개혁전선 형성

영어를 할 줄 알고 미국에 연줄을 갖고 있던 유학파들과 그들이 길러낸 목회자와 신도들은 미국교회가 지배한 한국교회를 지배했으며 개신교는 반세기만에 한국 최대 종교세력으로 성장했다. 뿐만 아니라 반공주의를 매개로 한국정부와의 유착·공생관계속에 정치엘리트 집단으로도 군림했다.

한국사회의 진행방향과는 반대로 더 기승을 부리는 듯한 개신교의 반공주의는 영원무궁할까? 저자는 개신교 반공주의 재생산 기제들을 반공순교자들을 부각시키는 대중적 순교담론과 신심운동, ‘제도적 이익 혹은 이익의 침해’, 반공적 담론 생산과 확산담당 ‘주체 또는 조직’, 군목·형목·경목제도와 조찬기도회 등의 ‘사회 기지’로 나눠 살핀 뒤 전망한다.

성장주의 이데올로기에 빠져 신자유주의를 방불케 하는 교회의 대형화가 급속도로 이뤄지고 목회자 과잉공급, 무한경쟁, 교회 불균등 성장과 양극화, 개인주의 확산과 파벌화가 진행되고 있는 한국교회의 상층부에선 보수세력 헤게모니가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하층부에서는 대항헤게모니연합, 새로운 교회개혁전선들이 형성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교단 또는 교파의 중요성이 줄어들면서 보수-진보의 대립도 부차적인 지위로 떨어지고 대신에 교권세력과 반교권세력, 수구 기득권세력과 개혁세력 사이의 대립이 주된 전선을 형성하지 않을까?

출처 : 인터넷한겨레(한승동 선임기자)
기사등록 : 2007-01-18 오후 08:51:42

by 나쥬니

태그 : 개신교, 민주화, 보수세력, 기독교, 반공주의, 신자유주의, 한국교회, 진보세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