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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이몽(同床異夢)

인터넷도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도구로는 아직 힘이 부족하다.
지난 주 처가집에 갔다가 장인 어른과 잠시 대화를 하게 되었다. 어르신이 먼저 말씀을 꺼내셨다.

"미국 이민법이 상원에서 부결됐다며? 5년이 이상 불법 체류자들에게 얼마 내면 영주권을 주는 법이라던데, 집권당인가 민주당인가 반대해서 그렇게 됐대" (→ 실제 집권당은 공화당이다.)
"그래요?"
"하원에서 통과시켰는데, 상원에서 부결됐대. 그것 때문에 시위하고 난리잖아." (→ 하원과 상원은 서로 다른 법안을 표결에 부쳤다.)
"그 상원법 때문에 하는 게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
"불법 체류자들한테 좋은 법은데, 상원에서 통과 안 되니까 그래서 시위하는 거야." (→ 시위는 하원의 반이민법 때문에 하는 거다.)

어르신은 하원이 불법 체류자들을 위하고, 상원이 그 반대인 듯한 인상을 갖고 계셨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기로는 하원과 상원이 서로 다른 법안을 상정했는데, 하원은 이민자들에게 불리한 법을, 상원은 그들에게 유리한 법을 내놓았다는 정도였다.

하지만, 어르신 앞에서 내가 확실하지도 않은 걸 가지고 주장할 수도 없고 해서 그냥 넘어갔다.

궁금해서 집에 돌아와 인터넷을 검색해서 미국 이민법에 대해 찾아봤다. 역시 내가 알고 있는 정보가 맞았다. 하원에서 통과된 법은 멕시코 국경지대에 장벽을 설치하고 불법 체류자를 고용하는 업주를 처벌한다는 반(反)이민법이고, 상원의 법안은 말그대로 불법 체류자 구제법안이었다.

장인 어른은 요즘 인터넷을 즐기고 계신다. 포털 사이트에서 뉴스를 즐겨 보시는 것 같다. 그런데 어떤 사이트에서 뉴스를 보시길래 잘못 알고 계신 건지, 아니면 같은 뉴스를 보면서도 미국을 이해하는 '컨텍스트(context)'가 달라 다르게 이해하시는 건지 모르겠다.

이건 우리나라 기성세대들의 대세가 아닌가 싶다. 미국 주류의 판단이라면 거의 무비판적으로 대부분 지지하시며, 진보 정당에는 다소 부정적인...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같은 뉴스를 접하고서 이렇게 다른 정보가 재생산된다면 좀 심한 게 아닌가. 인터넷도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도구로는 아직 힘이 부족한 듯하다. 어떤 사실과 정보를 보여줘도 '동상이몽(同床異夢)'일테니.

by 나쥬니

태그 : 동상이몽, 반이민법, 처가집, 무비판적, 미국 하원, 미국 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