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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문제에 대한 국가의 간섭

칼빈주의와 정치 [1] [2] [3] [4]

'종교 문제에 대한 정부의 간섭'이라는 문제에는 어려운 난점이 있다. 오히려 그 난점은 종교 문제에서 정부의 간섭을 요구하였던 칼빈과 그 시대의 몇 가지 사건(세르베투스의 화형과 같은)에 기인된다. 왜냐하면 그러한 점들로 인하여 칼빈주의가 종교의 자유를 핍박해온 것처럼 비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칼빈주의의 입장은 전혀 다른 것이다. '자유로운 국가 안의 자유로운 교회'...

이러한 역사적 불편함을 해소하게 위하여 한가지 원칙을 제시할 수 있다.
- "하나의 새로운 체계는 기존 체계와의 공통점에서 인식되지 않고 다른 점에서 구별된다."

다시 말하면, 종교개혁 시대에 칼빈이나 초기의 종교개혁자들이 요구했던 온갖 우상숭배와 거짓종교를 근절하는 정부의 의무는 칼빈주의의 발견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이교 황제들로부터 당했던 종교적 핍박에 대한 반발로 시작되었던 것이고, 로마교회를 비롯한 모든 기독교 황제가 옹호했던 것이다. 루터와 칼빈의 시대에는 그런 체계가 참된 것이라는 보편적 확신이 있었다.

역사는 세르베투스의 사형 집행과 같은 사건을 잘못으로 책망하고, 그것을 무조건 반대한다. 칼빈주의자가 이러한 역사적 입장을 갖는 것은, 그것을 칼빈주의의 독특한 특성으로서 반대하려는 것이 아니라 한 체계의 치명적인 부작용으로서 반대하는 것이다.

종교개혁 시대에 교회의 통일성에 따라 정부의 간섭을 요구했던 것이 결코 칼빈주의의 특징이 아니라는 점은 역사적으로 이미 증거되었다. 루터교 국가에서는 여전히 루터교가 국가 교회로 남아있고, 로마 가톨릭을 표방하는 나라는 로마교가 국가 교회로 남아있다. 그래서 그러한 나라에서는 개혁주의자들이 호된 대우를 받았다. 반대로 칼빈주의의 숨결이 닿은 네덜란드, 영국, 미국 등의 나라에서는 자유 교회들이 발전되었고, 그런 나라에서는 유대인이나 루터교도나 로마교도들도 자유롭게 그 신앙을 간직할 수 있었다.

칼빈주의가 가시적 교회의 모든 절대적 특성을 거부하는 이유는 양심의 자유를 옹호하기 때문이다. 칼빈 역시 가시적 통일성은 포기하였다. "기독교 진리에서 삼중적인 이탈이 존재한다.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나은 사소한 이탈과 온화한 징계로 회복해야 할 온건한 이탈과 엄중하게 처벌해야 할 명백한 불경건이다."

로마에서 시행되었던 핍박의 체계는 가시적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를 동일하게 여겼던 것에 의해서 지상에 하나의 교회만을 그리스도의 교회로 인정하였기 때문에 생겨났다. 칼빈은 이런 위험한 노선에서 떠났다. 그는 비록 여전히 진리의 고백과 절대 진리를 동일시하였지만, 칼빈주의는 개인의 확신이 참된 가운데서도 결코 다른 사람에게 강제로 요구할 수 없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계속 글이 이어집니다.]

요약/편집 : 나쥬니 (www.nazuni.p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