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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본질과 목적

칼빈주의와 종교 [1] [2] [3]

이제 교회의 본질, 현현, 목적에 대하여 칼빈주의는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교회의 본질

교회는 본질적으로 하늘과 땅을 포함하는 영적 유기체이다. 하지만 현재 그 중심과 행동의 출발점은 땅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의 영적 중심을 지구에 두셨고, 이곳에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사람을 지으셔서 우주를 자신의 영광에 바치도록 하셨다. 이렇게 사람은 우주 한 가운데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으로 서 있다. 비록 죄가 그 계획을 방해했지만, 하나님은 계획을 멈추지 않으시고 아들의 위격으로 자신을 이 세상에 주시어 인류와 우주가 영원한 생명과 새롭게 접촉하도록 하셨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나는 중생은 몇몇 개인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라는 유기체를 구원한다(인류라는 나무에서 많은 가지와 잎이 떨어졌지만). 그리하여 이 중생한 인간들이 하나의 유기적인 몸을 형성하는데, 그리스도가 그 몸의 머리가 되시며 그 몸의 지체는 그리스도와 신비적 연합으로 하나가 된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본질이다.)

그러나 이 새로운 유기체는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야 우주의 중심에 모습을 드러낸다. 장차 이 '새 예루살렘'은 하늘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올 것이지만, 현재 이 유기체는 이 땅에서 흐릿하게 분간할 수 있는 실루엣과 같을 뿐이다. 따라서 참된 성소는 하늘에 있으며, 그곳에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유일한 제사장 그리스도가 계신다.

교회의 이러한 천상적 특성은 중세 교회에서 점점 사라졌다. 성소를 다시 땅으로 내렸고, 제단을 쌓았고, 제단 사역을 위해서 사제의 교직제가 세워졌다. 또 땅에 보이는 제물을 찾게 되었고, 결국 미사라는 피없는 제물을 만들게 되었다. 중세 교회는 본질적으로 세상적인 것이 되었다.

칼빈주의는 원칙적으로 제사장직이나 제단, 성소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의 유일한 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가리우고, 참된 제단과 참된 성소를 볼 수 없도록 만드는 사제주의(sacerdotalism)에 맞서 싸웠다. 그리하여 지상적 제사장을 교직제의 형식으로 보존했던 감독파, 그리고 군주를 최고 감독으로 교회 위에 세웠던 루터파와는 달리 칼빈주의는 교회 봉사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을 절대적으로 동등하다고 선언하였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 표현된 불가시적(보편적) 교회라는 교의는 종교적으로 성별되며 우주론적이고 영구적인 의의에서 파악된다. 땅에서는 기껏해야 한 시대의 성전의 입구에서 한 세대의 신자가 발견될 뿐이고, 이전의 모든 세대는 이 땅을 떠나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말그대로 순례자였으며, 성전 입구에서 성소로 바로 들어갔다. (죽은 다음에는 구원의 가능성이 전혀 남아있지 않다.)

우리는 하늘에 있는 교회의 본질과 이 땅에 있는 교회의 불완전한 형식 사이의 절대적 대조를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모양으로 우리의 육신 가운데서 불가시적 교회로 들어가셨으며, 우리의 머리되신 그분과 더불어 그의 주위에, 그 안에 참된 교회, 참되고 본질적인 성소가 있다고 고백해야 한다.


교회의 현현

땅에서 나타난 교회의 현현 형식에 관하여서 말하자면, 칼빈은 교회를 신앙을 고백하는 개인 가운데서 발견하였다. 이 개인들이 성경의 명령에 따라, 그리스도의 규례를 따라 하나의 사회를 형성하여 왕이신 그리스도께 복종하며 함께 사는 일에 노력하는데, 이것이 바로 땅의 교회이다. 평신도에게 마술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건물이나 기관이나 영적 단체는 없다.

참된 하늘에 있는 불가시적 교회는 지상의 교회 안에 모습을 나타낸다. 참된 본질적 교회는 중생한 사람이 지체로 있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에, 이 땅의 교회 역시 그리스도께 연합되고 그 말씀으로 사는 사람들로만 구성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 땅의 교회는 말씀을 전파하고, 성례를 집행하고, 권징을 행하여 모든 일에 하나님 앞에 서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자기 교회를 가장 효과적으로 통치하신다. 성령으로 각 지체 가운데 역사하시므로, 신자간에 차별이 있을 수 없다. 오직 섬기고 이끌고 규제하는 사역자만 있을 뿐이다. (장로교의 정치 형식은 이중적이다. 그리스도의 주권은 절대 군주제이지만, 실제 교회 정치는 민주적이다. 교회의 권력은 그리스도로부터 회중에게 직접 내려오며, 이 권력은 사역자 안에 집중되며, 이 사역자에 의하여 형제들에게 시행된다. 따라서 모든 신자와 회중은 서로에게 아무런 통치권을 발휘할 수 없고, 교회 회의, 즉 연합을 통해서만 교회 정치가 이루어진다.)

교회가 신자의 회중으로, 즉 신앙을 고백하는 개개인들의 연합으로 나타나고, 그리스도로부터 교회의 권력이 회중에게 직접 내려온다면, 역사와 지역 등의 차이로 인하여 다양한 교회 문제가 발생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인 교회(불가시적 교회)는 필연적으로 다양한 모습(교단)으로 현현되어 가시적 교회(지상 교회)를 비추게 된다. (만일 교회가 신자와 독립된 은혜의 기관 혹은 교직을 맡은 기관이라면, 이 교회는 모든 나라에 퍼져 모든 형식에 있어서 동일한 특징을 갖게 될 것이다. 로마 카톨릭처럼.)

이렇게 교회(교단)의 다양함을 이끌어낸 '신자의 회중'이라는 교회 개념은, 자칫 신자의 자녀(아직 제대로 신앙고백을 할 수 없는)는 교회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칼빈주의는 신자의 후손과 연결되어 있는 자연적 유대를 끊어버리지 않고, 이 유대를 성별하여 세례로써 교회의 교제에 연합시킨다(유아세례). 그리고 이 자녀들은 스스로 신앙고백을 하거나 불신에 의하여 교회로부터 나뉠 때까지 교회의 교제 안에 유지된다. (이것이 언약 교의이다.)

언약과 교회는 떨어질 수 없다. 언약은 교회를 인류에 매어두고, 하나님은 은혜의 생활과 자연의 생활 간의 연결을 교회 안에서 증명하셨다. 교회 생활은 세대마다 이어지는 인류의 자연적인 유기적 번식과 나란히 전진한다. 이러한 전진은 교회가 단순히 전국민을 포함하는 국가 교회라는 개념 안에 머물 수 없음을 나타낸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국가에 속하지 않고 세계적이다.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 전세계가 교회의 영역이다.


교회의 목적

이제 교회가 땅에 나타난 목적을 살펴보고자 한다.
물론 이 땅에서도 교회는 오직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한다. 중생은 선택받은 사람이 자신의 영원한 운명을 확신하게 하는 데 충분하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만족시키기에는 충분하지 하기 때문에 중생 다음에는 회심(conversion)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하여 교회는 말씀을 선포하여야 한다. 중생한 사람에게서도 불꽃이 빛나지만, 회심한 사람에게서 비로소 타오르는 불이 된다. 회심과 선한 행위로 타오르게 된 불은 이렇게 교회로부터 세상에 비친다. 그렇지만 우리는 구원의 보장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으로 회심과 성화를 드러낸다.

또다른 교회의 목적은 성도의 교제와 성례를 통하여 이 작은 불꽃들을 하나로 모아 더욱 더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다. 동일한 방식으로 순전한 경배와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영적 예배,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의 신성함을 보존하고 이를 외부세계에 지속적으로 새겨두기 위한 교회 권징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집사 제도를 통해서 박애(philanthropy)의 봉사를 해야한다. 집사 제도는 구제하는 자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사람의 마음을 관대하게 하시는 그분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위임하는 것은 그분의 소유를 맡은 청지기로서 단순히 그리스도께 돌려드리는 것일 뿐이다. 그분의 이름으로 그분의 소유가 그분의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져야 한다. 집사는 우리의 종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종이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그분의 영광을 가로챌 수 없으며, 그리스도가 아니라 집사와 구제하는 자에게 감사하는 것은 위로자이신 그리스도를 사실상 부인하는 것이다.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칼빈주의에서 교회라는 개념은 앞서 살펴본 종교라는 근본 개념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는 하나의 종교, 하나의 교회를 갖는다. 교회의 기원은 하나님께 있으며, 그 현현 역시 하나님으로부터이며, 그 목적은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이다.

[계속 글이 이어집니다.]

요약/편집 : 나쥬니 (www.nazuni.p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