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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에 대한 사랑

칼빈주의와 학문 [1] [2] [3] [4] [5] [6]

네번째 강연에서는 칼빈주의와 학문의 연관에 집중하고자 한다. 한 강연에서 이 무거운 주제를 모두 담을 수 없기 때문에 네 가지 요점만 고찰하려고 한다.

  1. 칼빈주의는 학문에 대한 사랑을 장려했다.
  2. 칼빈주의는 학문을 제 영역에 회복시켰다.
  3. 칼빈주의는 학문을 자연스럽지 못한 속박에서 건져주었다.
  4. 칼빈주의는 학문적 갈등에 대한 해결책을 제공했다.

학문의 정의

먼저 왜 칼빈주의가 학문에 대한 사랑을 장려하지 않을 수 없는지 보여야 하는데, 칼빈주의의 '예정 교의'를 학문의 계발을 위한 가장 강력한 동기로 지적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 그러나 오해를 막기 위하여 우선 '학문'이 뜻하는 바를 설명해 보겠다.

여기서 말하는 학문은 전체 인간의 학문을 말하는 것이지, 특별히 단순한 경험론을 완전한 학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경험에 의하여 지각한 구체적 현상에서 보편적 법칙을 발견하고, 그것으로 현상의 전체 배열을 지배하는 사상에 도달할 때에야 비로소 개별 학문이 된다. 또 이 개별 학문, 즉 몇몇 학문의 주제는 하나의 항목으로 모이고 이론이나 가설을 통하여 하나의 원리의 지배하에 놓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온갖 결과들을 하나의 유기적 전체로 엮어내면서 인간의 학문을 이룬다.


하나님의 예정과 작정

그렇다면 이러한 학문에 대한 사랑이 하나님의 예정에 대한 칼빈주의적 신념을 통하여 효과적으로 확보되는 것을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 이 점을 이해하려면, 개인적 '예정'에서 일반적 '작정'으로 돌아가야 한다. 예정에 대한 신념은 하나님의 작정이 우리 개인 생활 속으로 침투한 것이다. 예정 교의는 하나님의 뜻의 통일성과 그 활동의 확실성에 대하여 이생과 내생에 기꺼이 처신하겠다는 우리의 고백이다.

이 (개인적) 고백을 하나님의 작정에서 보면, 모든 사물 즉 전체 우주의 존재와 과정이 하나의 법칙과 질서에 순종하며 자연과 역사에 그 계획을 이행하는 (하나님의) 굳은 의지가 있다는 것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다. 이것은 우리의 지성에 하나의 전포괄적 통일성이라는 개념을 심고, 모든 것을 지배하는 하나의 원리를 수용하도록 만든다. 즉, 우리는 모든 것을 다스리는 안정성과 질서가 틀림없이 존재한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우주는 마구 던져 쌓여진 돌무더기가 아니라 엄밀하게 일관된 방식으로 세워져 있는 기념 건물이다. 이 관점을 버리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떤 식으로 일이 발생할지, 모든 세계는 언제나 불확실해진다. 그리고 변덕과 우연에 관심을 갖게 되며, 아무것도 의지할 수 없고, 상호 연관도 없고 발전도 연속성도 없다. 이런 조건에서 학문은 어떻게 되겠는가? 인간 생활에 대한 연구는 모호하고 불확실해지며, 역사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없어진다. 역사는 사라진다.


만물의 통일성, 안정성, 질서

우리 시대에 이루어진 학문의 발전은 칼빈주의가 고백하는 하나님의 작정의 통일성과 안정성을 옹호한다. 인간 생활에 나타나는 견고한 사물의 질서는 거의 수학적인 증명으로 입증되고 있다. 학문은 우연과 변덕의 제물이 될 수 없다. 학문 전체의 발전은 굳건한 질서에 따라 하나의 고정된 계획을 지향하며, 하나의 원리에서 존재하고 발전하는 우주를 가정한다.

칼빈주의적 신념은 모든 존재하는 사물을 고정된 규례, 즉 하나님 안에 하나의 최고 의지에 종속시킨다. 또, 모든 존재하는 사물의 원인을 이미 수립되어 있는 계획으로 향하게 한다. 칼빈주의자는 모든 사물이 전체 창조와 전체 역사의 한 유기적 프로그램을 형성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하나님의 작정에서 자연법의 토대와 기원을 찾듯이, 모든 도덕법과 영적 법칙의 확고한 토대와 기원 역시 하나님의 작정에서 발견한다. 영적 법칙과 자연법은 모두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존재한다. 그 안에서 하나님의 경륜은 하나님의 영원하고 전포괄적인 계획의 완성을 성취하며, 그를 위하여 하나의 높은 질서를 함께 형성한다.

사물의 통일성과 안정성과 질서를 개인적으로는 예정으로 믿으며, 우주적으로는 하나님의 작정의 경륜으로 믿는 것이 칼빈주의적 신념이다. 이 믿음은 학문에 대한 사랑을 일깨우고 힘있게 그 사랑을 장려할 수밖에 없다. 이 통일성과 안정성과 질서에 대한 깊은 확신이 없이는 학문은 단순한 추측을 넘어설 수 없다. 오직 우주의 유기적 상호 연관에 대한 믿음이 있을 때에, 학문이 구체적 현상에 대한 경험적 탐구에서 일반적인 것으로 상승하며, 일반적인 것에서 그것을 규정하는 법칙으로 상승하며, 그 법칙에서 전체를 지배하는 원리로 상승할 수 있다. 모든 고등 학문에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자료는 이러한 믿음에서만 손에 쥘 수 있다.


하나님의 작정의 경륜에 대한 확신

칼빈주의는 조롱과 모욕을 받으면서도 우리의 전체 생활이 하나님이 친히 세우신 통일성과 안정성과 질서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굳건한 고집을 포기하지 않았다. 칼빈주의적 세계관은 통찰의 통일성, 지식의 확고함, 질서를 요구한다. 그리고 이 명백한 필요 때문에 지식에 대한 갈망이 되살아났다.

하나님의 작정의 경륜에 대한 확신을 무디게 만들던 반(半)펠라기우스주의와 맞설 당시, 그 시대의 일반 서민들에게 새겨져 있던 세계관과 인생관의 통일성이야말로 우연과 변덕에 자신을 맡기지 않는 학문적인 특징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계속 글이 이어집니다.]

요약/편집 : 나쥬니 (www.nazuni.p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