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섹션 : 신앙/성경

다른 왕국관과의 비교

1. 기독교 내의 다른 왕국관

※ 하나님 나라의 범위에 대한 이해는 우리 세계관에 대한 분명한 지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여전히 그 나라의 범위를 제한하려는 경향이 있다.

1) 경건주의
① 하나님 나라를 개인적 영역, 즉 영혼의 내면 생활로 국한시킨다.
눅17:21을 '너희 가운데(among you)'라고 번역하는 것보다 '너희 안에(within you)'라고 번역하는 것을 선호한다.
※ 이런 경향은 그리스도인의 생활면에 있어서 사회적 역할은 무시하고 각 개인의 윤리적 측면만을 강조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은 공적 생활의 영역을 배제하지 않는다. (참조. 사58:6-7;약1:26-27)

2) 로마 카톨릭의 전통
① 하나님 나라를 제도적 교회와 동일시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왕권의 범위를 제한한다.
② 오직 목사와 선교사만을 그 나라의 '전임 사역자'로 보고, 평신도들은 그들이 교회 일에 봉사하는 만큼만 그 나라의 활동에 관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③ 모든 인간사가 '교회와 세상'이라는 두 영역으로 나뉘어 있다고 오해하도록 만든다.
※ 이 전통은 이원론적인 뿌리를 가지고 있는데, 삶의 영역을 '거룩한 영역'과 '세속적 영역'의 두 영역으로 나누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에게 '완전한 삶'과 '허용된 삶'의 두 가지 생활 방식이 존재하는 것처럼 왜곡시켰다.

3) 세대주의
① 하나님 나라를 종말론적 미래로 국한시켜서 천년 왕국과 완전하게 일치시킨다.
→ '나라가 임하옵시며'를 '천년 왕국이 속히 임하옵시며'로 이해한다.
② 하나님 나라와 천년 왕국 모두 '이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4) 자유주의 (ex-사회 복음주의)
①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인간적이고 진보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에 '하나님 나라'라는 명칭을 붙이고, 이에 거스르는 모든 움직임은 근본적으로 세속적인 것으로 파악한다.
② 그 나라가 자유 민주주의나 마르크스 주의의 사회 정치적 운동에 나타난다고 본다.

2. '두 영역'과 '두 통치'

1) 창조계는 각각의 독특한 특성에 따라 서로 다른 여러 영역으로 나누는 것이 가능한데, 이런 구분 자체는 하나님이 정하신 창조 질서로서 선한 것이다.
※ 이렇게 구분할 수 있는 영역을 예로 들자면, 교회, 가정, 정치, 사업, 예술, 교육, 출판, 사고, 감정, 식물과 동물, 무생물 등이다. (참조. 창1:11,21,24,25,27,...)

2) '두 영역' 이론은 이 영역 자체를 구분하여 '거룩한 것'와 '속된 것'으로 나누는데, 흔히 교회(하나님의 나라)와 그 밖의 영역(세상)으로 쉽게 분할한다.

3) 하지만 성경의 관점은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을 '두 영역'으로 구분하지 않고, 창조계 전체에 나타나는 하나님과 사탄의 '두 통치(=나라)'로 구분한다. 따라서 각각의 모든 영역에서 이 통치권 사이의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창조의 법에 더 순종하고 일치하는 만큼 하나님 나라의 영토는 확장되지만, 인본주의 정신(골2:8)이 인간의 사고를 세속화하는 곳에서는 그 영토를 잃게 된다. 이런 현상은 어떤 영역에서나 나타나는 것으로 '중립적'인 영역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은, 피조계가 위치하는 영역, 즉 '구조(창조 질서)'에 의해 구분되지 않고, 어떤 통치에 따르는가 하는 '방향'에 의해 구분된다. 방향의 양상은, '순종/불순종', '타락(죄)/구속', '왜곡/회복' 등으로 구분지을 수 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골2:8)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6:24)

3. '육'과 '영'의 대립

1) 두 왕국 간의 구분은 개개인에게 있어서 '육'과 '영' 혹은 '옛사람'과 '새사람'의 구분과 동일하다.
※ 종교개혁은 '육'과 '영'을 희랍 철학의 '육체'와 '영혼'으로 이해하지 않고, 육체와 영혼 모두를 둘로 나눈다고 보았다. (루터 - "전인격이 육신이다")

2) '육체의 일(갈5:19-21)'은 단순히 육체적인 범죄가 아니며, '성령의 열매(갈5:22-23)' 역시 단순히 정신적인 것이 아니다.

3) '영'과 '육'은 전인격에 걸쳐서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 바울은 갈5:17에서 '거스른다'는 반립(反立)과 관련된 헬라어를 사용하였다.

4)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창조의 본의를 재확정하시고 영화롭게 하기 위해 왜곡에 대항하신다. 이러한 '성령의 일'을 거스르는 것이 바로 '육체의 일'이다. (참조. 고전6:19-20;엡4:30;살전4:7-8;약4:5)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롬8:9)

요약/편집 : 나쥬니 (www.nazuni.p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