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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요리문답은 1643년 7월 1일부터 1648년 2월 22일까지 영국의 장기의회가 영국 웨스트민스터에 소집한 성직자들과 의회원들의 유명한 전국적 회의에서 작성되었다.

처음에 상원의원 10명, 하원의원 20명, 그리고 성직자 121명이 소집되었으나, 후에 결석자들을 보충하기 위해 21명이 추가되었다. 수년에 걸쳐 지속된 이 회의들의 평균 출석수는 60~80명이었다.

소집된 인사들은 각각 감독교회, 장로교회, 독립교회, 에라스투스 제도를 대표하였으나, 1643년 영국과 스코틀랜드 양국간에 '엄숙한 동맹과 언약(Solemn League and Covenant)'이 서명된 후 감독교회 인사들이 물러가고 출석자의 대다수는 장로교파였다. 독립파와 에라스투스파로 인한 끊없는 논쟁은 회의 진행을 1644년 말까지 지연시켰다.

결국 1646년 12월 3일에 신앙고백서가 의회에 제출되었으며, 의회의 지시에 따라 1647년 4월 29일에는 각 명제에 대한 성경구절 주석이 첨부되었다. 그 뒤를 이어 소요리문답은 1647년 11월 5일에, 대요리문답은 1648년 4월 14일에 보고되었다. 이 문서들은 영국 의회뿐만 아니라 완성되는 대로 스코틀랜드 총회가 비준했다.

그러나 크롬웰 군대에 의해 의회가 예속되자 곧 장로교 목사들이 축출되었다. 그는 강제로 장기의회를 해산시켰으며, 그에 따라 위원회는 해체되었다.

미국의 처음 지방노회가 1729년에 이 신앙고백서와 요리문답을 교회의 신앙고백으로 채택해으며, 이 문서들은 스코틀랜드와 영국과 아일랜드와 미국의 모든 장로교회들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국가적 교회에 대한 견해를 거부했던 미국의 지방노회는 신앙고백서 제20장, 제23장, 제31장 등의 일부를 수정했다. 이렇게 변경되고 수정된 신앙고백과 요리문답들이 미국 장로교회 교리 부분이 되어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